예배

새벽예배

> 예배 > 새벽예배

[새벽예배말씀] 마22:15~22 (1/12,화) '바람직한 신앙생활'

제목 : 바람직한 신앙생활

 

찬송가 : 422거룩하게 하소서

 

본문 :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1. 본문 15~16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헤롯당과 함께 손을 잡습니다. 헤롯당은 헤롯왕가를 지지하고 헬라문화를 찬성하는 자들입니다. 사두개인은 정치적으로 우파적인 성격을 띄고 있고 바리새인은 좌파, 헤롯당은 극우파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빠지게 하기 위해 친하지 않았던 극우파와 좌파, 헤롯당과 바리새인이 손을 잡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세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경건을 강조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려고 반응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공격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무조건 옳다는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의 세계에 갇혀있는 편협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이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 내 생각에 잡혀 있으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바른 조언을 해줘도 나를 공격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여기고 마음에 벽을 세우고 반감하게 됩니다. 나는 무조건 옳고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나는 이상 없다고 벽을 만듭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변화 되어야 한다는 음성이 들려도 벽을 세우고 하나님을 공격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늘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가지고 바리새인처럼 적개심을 품고 반응하지는 않는지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고 정직하게 반응하면서 우리 삶에 변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 17~18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먼저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이렇게 칭찬의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수는 사람을 꺼리지 않고 외모로 취하지 않으며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세금 문제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도록 몰아가려 합니다. 자신들은 로마가 두려워 그렇게 말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악독한 마음을 품고 행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신앙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첨하고 칭찬하다 계획을 짜서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악독한 모습입니다.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의 진실함은 목적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납니다. 아주 잘못된 방법으로 경건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면 그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적용을 한다면 나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쩐 방법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다시 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삶은 굉장히 위험한 사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사두개인, 헤롯당에 반발해서 생겼음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과 손을 잡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내가 사용하는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내가 욕을 먹고 목적이 더디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바른 방법을 통해서 나아가는 것이 정당하고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속에 바르지 못한 방법을 가지고 좋은 뜻을 이루려 하는 마음이 있다면은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본문 20~21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 문제는 그 당시 바리새인들도 딜레마에 빠져있던 문제였습니다.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의 반발과 핍박이 주어지고 바치라고 하면 그 당시 다수의 국민들, 백성들이 싫어해서 중간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 문제를 가지고 와서 질문을 하지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을 합니다.

  가이사는 나라를 통치하는 황제를 말합니다. 위정자의 것은 위정자에게 세상에 대한 의무는 다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둘 다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는 의무들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감당해야 할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두 개 다 감당해야 할 문제입니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삶을 살아가며 두 가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택의 문제로 가서 한 가지만 열심히 하고 다른 한 가지는 열심히 하지 않으며 등한시 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예배하고 봉사하지만 세상이나 직장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 또 반대로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잘하지만 교회에서는 예배시간도 잘 지키지 않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지 않는 이 두 가지 모습 모두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아가고 세상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두 가지 모습이 함께 갑니다. 물론 두 개가 충돌할 때에는 하나님, 교회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충돌하지 않을 때는 교회의 일과 세상에서의 일을 모두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이러한 신앙생활의 균형이 잡히지 않고 하나를 무시하며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면 우리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의무와 역할들을 세상속에서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기도제목

나라와 민족, 위정자들을 위해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한국교회의 회복과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우들과 출산한 가정들,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